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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리된 개체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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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179.233), 작성일 08-11-16 12:04, 조회 4,106, 댓글 0

본문


분리된 개체처럼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가 우주를 지배하는 지능의 패턴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와 주위의 환경은 하나이다.



자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자신의 몸이 어느 지점에서 끝나 있다고 인식한다.



우리의 몸은 방의 벽이나 집 밖의 나무와는 텅 빈 공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 그러나 양자의 관점에서 보면 ‘고형 물질’과 ‘빈 공간’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1입방센티미터마다 양자 공간은 거의 무한대의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또한 아무리 미세한 진동이라도 그것은 전체 은하계 속을 진동하고 있는 광대한 장의 일부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환경은 곧 우리 몸의 연장이다. 호흡을 할 때마다 우리는 중국에 사는 누군가가 어제 내쉰 수억 개의 공기 원자를 들이마신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산소와 물과 햇빛은 우리 체내에 있는 것과 거의 다를 것이 없다.









원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사물과 합일되어 있는 상태를 체험할 수 있다.



보통의 깨어 있는 의식 상태에서는 당신은 장미를 만져 보고 딱딱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의 에너지와 정보의 덩어리인 당신의 손가락이 또 다른 에너지와 정보의 덩어리인 장미를 만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손가락과 그것이 만지는 대상은 둘 다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무한한 장의 한갓 미세한 끄트머리일 뿐이다.



 이러한 진리가 고대 인도의 성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이렇게 외치게 하였다.









소우주가 그러한 것처럼 대우주 또한 그러하도다.



원자가 그러한 것처럼 우주 또한 그러하도다.



인간의 몸이 그러한 것처럼 우주의 몸 또한 그러하도다.



인간의 마음이 그러한 것처럼 우주의 마음 또한 그러하도다.









이것은 한낱 신비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분리의 상태에서 의식을 해방시켜 만물과의 일체성(unity)을 확인한 이들의 실제적인 체험이다.



 일체성 속에서는 ‘외부에’ 있는 의식, 사람들, 사물들, 그리고 사건들은 모두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사실, 우리는 이 영향력들의 중심에 있는, 관계들의 거울일 뿐이다.



 유명한 자연주의자인 존 뮤어(John Muir)는 “무엇인가를 따로 집어내려고 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이 우주 속의 모든 것들과 얽혀 있음을 발견한다.”고 외쳤다.



 이것은 결코 희귀한 경험이 아니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물들의 주춧돌이다.









일체성의 경험을 할 수 있는가는 노화와 관련해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와 우리의 연장된 몸 사이에 조화로운 상호작용이 있으면 우리는 기쁘고 건강하고 젊은 느낌을 느끼기 때문이다.



“공포는 분리에서 나온다.”고 인도의 성현들은 말한다.



이 말 속에서 그들은 우리가 왜 노화하는가를 깊숙이 지적해 주고 있다.



 자신을 분리된 존재로 봄으로써 우리는 자신과 ‘외부의’ 사물들 사이에 혼돈과 무질서를 만들어 낸다.



최종 상태의 분리인 죽음은 공포스러운 미지로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생명의 일부인 변화의 가능성 그 자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자아낸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상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일어나면 그것은 불가피하게 폭력을 수반한다.



다른 사람들, 사물들, 사건들이 우리와는 떨어져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게 만들고자 한다.



조화 속에는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성 속에 있는 사람은 지배가 불가능한 것을 지배하려고 무모하게 애쓰는 대신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내면과 그의 연장된 몸 속에는 평화와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성현인 크리슈나무르티(Jidu Krishnamurti)는 경이롭게 각성된 의식과 지혜와 줄어들 줄 모르는 활력으로 90여 성상을 살았다.



 나는 그가 여든 다섯의 나이로 강단을 향해 계단을 뛰어 올라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그를 여러 해 동안 알고 지낸 한 여인이 하는 말에 나는 매우 감명 받았다.



 “나는 그에 대해서 이 한 가지만을 알았습니다. 그에게는 폭력성이 전혀 없습니다.”









양자적 우주관은 그 방정식과 가정에 관한 한 영적인 관점이 아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발견에 대해 신비로운 경외감으로 일치되어 있었다.



닐스 보어는 물질의 파동적인 속성을 우주심에 비교했다.



그리고 어빈 슈뢰딩거는 우주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마음이라는 믿음을 간직한 채 생을 마쳤다.



(이것은 중력과 다른 모든 힘들이 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이라고 한 뉴턴의 말을 재확인시킨다.)



진리인 것은, 인간 자신의 영혼을 탐사하는 것이 언제나 인간을 더 큰 의미의 영혼의 가장자리로 데려다 놓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이러한 만남을 객관적인 관점에서 서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한때 마음과 몸과 영혼을 갈라 놓았던 경계를 실제로 넘나들 수 있게 해준다.



분리로부터 일체로, 분쟁으로부터 평화로의 변화가 모든 영적 전통의 목표이다.









“우리는 똑같은 객관적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이 대답했다. “그렇다. 그러나 그대는 세계 속에 있는 자신을 보고 나는 내 속에 있는 세계를 본다.



 이 하찮은 인식의 전환이 속박과 해방의 그 모든 차이를 만든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을 분리되고 외떨어진 존재로 봄으로써 만들어낸 무질서 속에 구속되어 있다.



 그 완벽한 예가 감정이 격하고 욕구불만적인 행동은 보이며 끊임없이 마감시한에 쫓기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A형의 성격(Type A Personality) - 성급하고 경쟁심이 많으며 항상 긴장하고 있는 인간의 행동유형. 미국의 심장의학자 메이어 프리드먼(Meyer Friedman)과 로이 로젠먼(Roy H. Rosenman)이 만든 말이다. - 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어떤 종류의 포용성이나 흐름 속에도 자신을 풀어놓지 못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의 상처를 분노로 키워 간다.



 이같이 억눌린 혼란은 적개심과 성급함, 타인에 대한 책망, 까닭 없는 공포로 주변 환경에 투사된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남을 지배하려고 하며 사소한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과민하게 반응하여 자신과 남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가한다.



특히 사업계에서 A형의 사람은 끊임없이 혼돈을 일으키는 와중에서 자신은 성공적으로 경쟁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기만에 빠진다.



실제에 있어서는 일의 성과는 매우 낮으며 욕구불만이 쌓여 감에 따라 자신의 연장된 몸으로부터 들어오는 피드백은 육체적 몸 속에 더 많은 폐허상태를 만들어 낸다.



 혈압과 콜레스테롤치가 상승하고 심장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성 발작을 잘 일으켜 치명적인 심장마비나 뇌졸중의 위험이 심각하게 높아진다.









A형의 성격은 자신의 연장된 몸과 조화롭게 교류하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지는 해로움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환경 속에서 인식하는 스트레스는 모든 사람들을 덮쳐 오는 대부분의 노화현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를 노화하게 만드는 것은 스트레스라기 보다는 스트레스를 인식하는 것이다.



 ‘저 밖에’ 있는 세계를 위협으로 보지 않는 사람은 스트레스 반응이 가져오는 손상에서 해방되어 환경과 공존할 수 있다.



 여러 모로 보아, 늙지 않는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세계가 바로 당신 자신임을 확인시켜 주는 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가지는 것이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2-09 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