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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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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빛과함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66.240), 작성일 09-12-12 22:59, 조회 5,576, 댓글 3

본문


지금 이순간은

가장 깊은곳에 있는 당신의 참모습과 분리될수 없다.

당신의 삶에는 중요한것이 많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중요한것은 단 하나뿐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당신이 성공했나,실패했나가 중요하다.

또한 당신이 건강한지 아닌지, 교육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가 중요하다.

당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가 중요하며,그것은 분명 당신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 상대적 차원에서는 이 모든것들이 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것들은 절대적 차원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찾는것이다.

당신 스스로를 만들어낸 일시적인 자아상을 넘어서 존재하는 그것을 찾는것이다.

내면의 평화로움을 찾는 방법은 삶의 환경을 고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은곳에 존재하는 당신 본연의 모습을 깨닫는 것이다.



다음생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환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은 '나'와'우리'에 대한 잘못된 관념에서 나온다.

그것이 본연의 모습을 가려 버린다.

내면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결국 자신을 고통속에 가두고 만다.







간단한 이치다.

내가 진정 누구인지 모를때

나의 아름답고 성스러운 존재를 대체하기 위해

생각이 만들어낸 자아상에 매달리는 것이다.

두려움과 욕망에 지배당하는 자아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 그런 잘못된 자아상을 보호하고 치장하는 것이 내삶의 목적이 된다.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의 구조속에는,

이미 자신의 참모습을 모른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는 말이나 "나의 삶" 이라는 말속에는

마치 삶이나 생명이 소유하거나, 잃을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내가 생명을 가진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생명이다.

우주전체에 충만한 '한생명' 또는 '한의식'이 잠시 한형태를 취하여

돌멩이로, 풀잎으로, 동물로, 인간으로, 별로, 은하계로 체험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껴보라.

당신은 이미 그것임을 느낄 수 있는가?

세상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집을 한채 짓고,

전문가가 되는 일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차 한잔을 만드는데도 시간은 필요하다.







하지만 삶의 가장 본질적인 일이자

진정 중요하고 유일한 일에는 시간이란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바로 '나를 깨닫는 일'이다.



그것은 외형을 초월하고,이름과 형상을 초월하고

나의 역사와 이야기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본연의 나를 아는 일이다.

과거나 미래에서는 나를 찾을 수 없다.

나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지금 이순간'이다.







구도자들은

깨달음과 자기 실현을 미래에서 찾는다.

구도자가 된다는 것은 미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진실이 된다.



다시 말해서 본연의 당신이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무를 보면 나무가 거기 있음을 안다.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할때에는 생각이나 감정이 거기 있음을 안다.

기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할때는 그런 체험이 거기 있음을 안다.







이말은 틀림없는 사실인듯 느껴지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미묘하고도 근원적인 착각을 담고 있다.

이는 언어를 사용할때면 피할 수 없는 착각이다.

사고와 언어는 날카로운 이분법을 적용해 다른 것들과

분리된 인간존재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인간은 실재로는 없음에도 불구 하고 말이다.



진실은 나는 나무를 인식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고 감정 체험이 거기 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맑은 마음이며,순수의식이다.

나를 통해 사고 감정체험을 나타날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맑은 마음임을 알수 있겠는가?

그안에서 당신 삶의 모든 내용이 하나씩 전개 되는

그런 맑은 마음을.... 당신은 말한다.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싶어"라고

하지만 당신이 바로 '나'이며 당신이 바로 앎이다.



당신이 바로 그를 통해 모든것이 알려지는 순수의식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스스로를 알수는 없다.

그것은 다만 그것 자체 일뿐...







그 이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모든 앎은 다 그것에서 나온다.

'나'는 그것 자체를 지식이나 순수의식의 대상으로

만들수가 없다.



그러므로,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어떤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에고적 정체성이라는 착각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이미 당신은 마음에서 당신 자신을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당신은 말한다. "그게 나야"







그리고는 당신자신과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남들과 당신자신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현상계의 존재들이 생성되는 맑은 마음임을 알때,

당신은 현상계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 당신은 상황과 장소와 조건속에서 자아상을 찾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물이 그 무거움과 심각함을 떨궈 버린다.

당신 삶에 슬며시 장난기가 들어 온다.

이제 세상은 우주의 춤이다.

형상의 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본연의 모습을 알떄,

살아있는 평화로움이 언제나 거기 있다.

그것을 기쁨이라 불러도 되겠다.

기쁨이란,바로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평화로움이니까.

그것은 생명이 아직 형상을 취하기 이전의 모습

생명의 실체로서의 당신 자신을 아는 기쁨이다.

그것이 바로 존재의 기쁨,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사는 기쁨이다.



물이 고체,액체,기체로 존재하듯이,

순수의식도 동결되어 '물체'로 존재하고 '액체'화되어

마음과 생각으로 존재하고,형상을 여의어 순수의식으로 존재한다.

순수의식은 형상화 이전의 생명이다.







그 생명이 당신의 눈을 통해 형상의 세계를 본다.

순수의식이 당신이니까...

당신이 그런 존재임을 알고 나면

당신은 세상 만물속에서 당신 자신을 본다.

이제 당신에게는 무겁고 고통스런 과거는 없다.



당신의 체험을 걸러 주고 해석해주는 관념의 필터 역활을 아는 과거가...

아무런 해석없이 지각 작용이 일어날때,

비로소 당신은 지각하는 주체가 무엇인지 알아볼수 있다.

언어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은,

깨어 있는 고요함의 장안에서 지각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신을 통해서 형상을 여윈 순수의식이

자기 자신을 알아 보게 된다.

사람들의 삶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를 받는다.

욕망은 무언가를 더하여 좀 더 풍성해 지려는 욕구이다.



반면 두려움은 무언가를 잃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렇게 더하고 잃어버리는 두가지 활동은,

생명이란 본래 줄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풍요한 생명은 이미 지금 이순간 당신 안에 존재한다.





-- 에크하르트 톨레 --

vinhpumj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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