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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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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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thian 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61.♡.117.91), 작성일 03-02-24 22:36, 조회 5,758,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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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도와주셔서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만, 아직도 병원에 입원중입니다.우리 아기의 증상인 장중첩증은 거의 회복된 듯하다고 합니다. 주치의는 결과나 현황에 대해 결론적안 말은 없고, 그 밑에 있는 레지던트는 깨끗하지는 않지만 좋아졌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이 뭘 뜻하는지 잘 모릅겠습니다). 그런데 주치의는 다시와서 두 가지 정도의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합니다. 왜 혹은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말이 없습니다. 다시 레지던트에게 물어보니, 증상은 회복된 듯하고(아마, 중첩된 장이 다시 펴졌다는 뜻인 듯...), 그러나 원인은 아직 모르고...왜냐하면 아직 그런 쪽으로 검사를 하지 않았기에...그래서 이제는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는 쪽으로 나가겠다는 것이 주치의의 뜻인것 같다...그러니 우리 부부가 이제라도 의논을 해서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말 것인지를 결정하라...검사일정은 미리 잡아놓았다...이런 것입니다."회복된 것 같다..." 들으니 참으로 기쁜 마음입니다. "회복되었다"는 말보다 좋지는 않지만, 우리 아기가 예전처럼 잘 웃고, 활달해져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적어도 배를 가르는 수술은 일단 피하지 않았습니까. 조원장님께서 좋은 기를 보내주셨다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다른 분도 음으로 기원하셨다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병원에서 사람들과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괴롭고 부끄럽습니다. 아기의 고통이 저의 공격적이고 오만한 성격이나 마음가짐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괴롭습니다. 그리고 아직 용기가 없어서 고백하지 못할 저의 단점과 약점과 잘못을 생각하니, 더더욱 한탄스럽습니다. 저의 죄를 고백하고 멀을 받음으로써 우리 아기의 치유에 똥이 되고자 하지 않고, 히란야나 피라미드에 의지하고자 했던 저는 어리석기도 합니다...그러면서 서서히 떠오르는 상념은 더욱 저를 괴롭힙니다.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까봐...이 병증은 재발가능성이 있는 것이라 합니다. 저의 어리석음은 병의 원인제거를 위한 병원비지급문제를 염려하면서 더욱 심해집니다. 의사는 환자의 빈부를 따지지 않는다, 다만 의학적인 원칙대로 할 뿐이다. 레지던트 의사의 말이 제게는 비수처럼 느껴집니다.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저의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 아기를 건강하게 하고 싶다는 염원을 넘어서는 듯합니다.

저녁에 아내는 밖에 나가 분유를 사오면서 맥주를 하나 사왔습니다. 원래 술꾼인 저는 그 시원한 맛을 거부했습니다. 정말로 저의 가슴이 시원해졌으면 좋겠지만, 맥주거품이 자극하는 육체가 아니라 저의 마음이 저의 혼란스런 가슴이 아득해졌으면...맥주를 사오는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사실 우리는 그동안 병실에 있으면서 서로 감정이 안 좋았습니다.저의 이런저런 불만은 병원직원이나 의사와의 갈등으로 번져갔습니다. 정말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보다 더 혁명적인 사회가 어서 왔으면 물질이 저의 마음을 헤매이게 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왔으면...마음에 불길이 칼들의 숲을 이룹니다. 어서 돈도 없어지고 물질도 없어져서 창조된 대로 순수하게 살아가는 날이 왔으면...

제가 갖고 있는 히란야가 소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원장님의 글을 읽고 그 히란야를 치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기도 하더군요. 제 손에 더 이상 어떤 의지할 도구가 없어져서, 이제는 오로지 마음에 의지할 것밖에 남지 않은.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걸어봤습니다. 제 주위로는 의사들이 걸어다닙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의논하고 분주히 움직입니다. 간호사들도 그러합니다. 다른 직원즐도 그러합니다. 다만 환자들이 느릿느릿 부자연스럽게 흘러다닙니다. 저는 하나의 보호자로서 오줌을 누고 담배를 피우고 기저귀를 갈고 커피를 마시고 비용을 염려하고 아기의 병증을 걱정합니다. 이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곳에서 저는 침묵속으로 구겨집니다.

아기의 건강에 대한 과다할 정도의 이 걱정은 나름대로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입에 담기가 차마 불경스럽다고나 할까 아니면 말이 마를 끼게 할까 두려습니다.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을 저는 혼자 가슴에 안고 갑니다.

누군가에게 자꾸 의지하고픈 이마음---그러나 그 누군가중에는 저 자신의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가서 새로운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생겨난 아기의 질환에 저희 부부의 생각과 마음은 모든 곳을 헤집고 다닙니다. 40넘어 첫아이를 낳은 아내를 생각하면 저의 책임감은 저의 이상과 꿈이 미워집니다. 윤동주의 시속에서처럼, 자신을 미워하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자신을 그리워하는 한 사람의 그림자에게...

글을 길게 적다보니, 가슴에 흐르는 물줄기도 길어집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걱정해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지...무욕했던 아내의 마음이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군요. 잠자는 아기에게 너의 질환의 원인이 무어냐고 물어보니 아기는 웃다가 울다가 합니다. 어떤 결과가 되더라도 부디 아기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기를 기원하는 저의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죄송합니다.
* 운영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12-11 11:51)

오길문님의 댓글

오길문 이름으로 검색 211.♡.92.132,

  히란야를 벗고 있으셔인지 모르겠지만 몸의 기운이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는듯하네요. 물론 제 기운이 달라져서 다르게 느껴지는건지도 모르겠지만, 예전같이 아주 날카로운 기운은 많이 없어지신듯도 합니다. 답답하신 마음이야 모르겠습니까만은 서서히 얼음녹듯 사그러져버리고 평안한 생활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또한 사랑스러운 님의 아기가 빨리 회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