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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대한 개인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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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바바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200), 작성일 13-02-07 19:32, 조회 5,5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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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5일 새벽



세세한 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두 세명의 사람들과 어울려 있는중 한사람이 이간질을 하는 장면이 보이고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나를 찾아온다는 애기를 듣는다.

그 순간 찾아온다는 그 사람은 예전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꿈에서도 안절부절 못하면서 공포에 떨기 시작하는데



꿈과 현실이 동시에 “ 쾅 ” 하는 문여는 소리를 듣는다.



방금 꿈에서 깨어났지만 그 여운이 온몸에 흐른다.

불안감, 빠른 심장박동, 두근거림, 한기, 등 두려움의 생각이

몸 세포하나하나에 반응을 일으킨다.



순간 드는 생각에 꿈에서 느낀 두려움은 예전 과거의 생각의 기억으로 인해

다시 습관처럼 그 비슷한 상황에 다시금 몸이 반응하는 자신을 보고

마음을 쫓기 시작했다. 두려웠던 과거의 회상이 아닌 두려움 그 자체를...

허탈했다. 나 자신이 두려움을 머리에서 기억하고 마음으로 그 상황을 느끼고

재현하는 연출자였다.  즉 두려움도 스스로 만들뿐이었다.



다음 글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1895년 5월 12일 (인도) - 1986년 2월 17일) 의 글입니다.



두려움은 삶에서 가장 큰 문제들 중의 하나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은 혼란 속에 살고 갈등 속에 살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일그러지고 공격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은 스스로 만든 생각의 틀에서 좀처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이 위선을 낳는다.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무리 높은 산에 올라가고 별의별 신을 다 만들어내도 그 마음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17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은, 두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하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말 자체가 무슨 뜻인가? 내가 묻는 것은 두려움이란 무엇인가이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가 아니다. 19

 

 

 

생각은 기억에 대한 반응이며 기억은 언제나 낡은 것이기 때문에 생각이란 언제나 낡은 것이다. 이 생각이 곧 두렵다는 느낌을 만들어내지만, 그건 실제 사실이 아니다. 실제 사실은 그대가 건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형태로 마음속에 남아있던 경험이, '조심해, 다시는 병에 걸리지 마' 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21

 

 

 

두려움은 생각의 결과인가? 그렇다면 생각이란 언제나 낡은 것이므로 두려움도 언제나 낡은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설사 새로운 생각을 인정한다 해도,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낡은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낡은 것이 되풀이되는 것, 즉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을 미래에 투사하는 것이다. 22

 

 

 

지금 우리의 문제는, 마음이 완전히 그리고 전체로 현재에 사는 게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두려움 없는 마음뿐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생각과 기억과 시간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머리나 말로만 이해하지 않고, 정말 가슴으로 마음으로 뼛속 깊이 이해하면 두려움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은 두려움을 만들어내지 않고 생각할 수 있다. 22

 

 

 

생각의 기능 가운데 하나는 늘 무엇인가로 바쁘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마음이 쉴 틈 없이 바쁘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실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지 않아도 될 테니까. 우리는 비어있는 걸 두려워하고, 자신의 두려움을 보는 걸 두려워한다. 23

 

 

 

마음이 두려움을 가진 여러 가지 다른 형태가 아닌 두려움 자체를 지각할 수 있을까? 그대가 두려워하는 대상을 지각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 전체를 지각할 수 있는는 말이다. 단순히 두려움이 가진 자질구레한 것들만 보거나 그대의 두려움을 하나하나 따로 다루려고 하지 말라. 그러면 문제의 핵심 즉 두려움과 더불어 사는 걸 배우는 데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26

 

 

 

관념을 보지 않고 두려움 자체를 본다면, 실제 사실을 살펴본다면 두려움이란 단지 미래라는, 내일이라는 관념이요 개념일 뿐이며, 그것이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28



 

 

무엇인가가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기때문에 그것에 의존한다. 지식에 의존하고, 책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공허함을, 나의 가벼움을, 나의 어리석음을 감춰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이 무척이나 중요해졌다. 나는 그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자신이 속으로 그것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존하는 것은 내가 공허하고 외롭고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의존한다. (중략) 그래서 나는 의존하는데, 그 말은 내가 외로워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뜻이다. 나는 나의 공허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나는 그 공허함을 물건들로, 관념으로, 사람으로 채운다. 45

 

 

 

내 공허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의존하고, 그래서 나는 집착하고 있다. 내 안에 이런 커다란 공허한 느낌이 있을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나는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집착한다. 그 두려움은 기억에 대한 반응과는 전적으로 다른 무엇이다. 그럼 그대에게 일어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알게 된 것인가? 아니면 과거가 반응하는 것인가? 47



 

 

두려움은 모든 것을 부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이 어떻게 두려움을 만들어내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 말고는 두려움 같은 건 없다. 마음은 쉴 곳을 원하고, 마음은 안전을 원하면, 마음은 갖가지 형태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한 너희는 두려움을 가질 것이다. 야망을 이해하는 것, 권위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두가지 다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것은 곧 파괴이다. 81

 

 

 

생각이 끝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질문 자체가 아주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쾌락이 아닌 환희와 축복을 경험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건 잘못된 질문이다. 생각을 끝냄으로써, 우리는 뭔가 굉장한 것 즉 쾌락과 두려움의 산물이 아닌 것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하면 생각을 끝낼까하고 묻지 말고, 삶에서 생각이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물어보라. 생각과 행위와의 관계와 생각과 무위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115

 

 

 

이러한 두려움, 욕망, 시간의 움직임 전체가 그대이다. 그것이 바로 그대의 의식이다. 자신의 의식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그대가 바로 의식이니까. 그러니 의식과 더불어 있으라. 그것과 함께 있으면서 거기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면, 마치 어두운 곳에 강한 조명을 비추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두려움 자체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 135

 

 

 

그때 존재는 시간에 제한되지 않으며 오직 진행 중인 현재다. 그러나 그 현재는 시간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의 경계가 없고 느낌의 경계가 없는 주의집중이다. 말이란 의사를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며 말과 상징 자체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삶이란 늘 진행 중인 현재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 속해 있고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속해 있다. 시간을 버리는 것이 현재를 사는 것이다. 의식 안에 있는 삶은 죽지만 현재에 사는 것은 죽지 않는다. 시간은 의식 안에 있는 생각이며, 의식은 자기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생각과 느낌의 그물 안에는 언제나 두려움과 슬픔이 있다. 슬픔의 끝이 시간의 끝이다. 159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거부하는 것이 善의 시작이다. 선은 맑고 깨끗하다. 그것은 갈등과 슬픔을 닦아낸다. 162

 

 

 

갈등과 혼란과 슬픔을 가지고 있는 이 권력이 완전히 사라지면, 저마다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나는 한 다발의 기억과 깊어지는 외로움일까, 하는 문제에. 권력과 출세를 향한 욕망은 이 외로움에서 도망치려는 것이며 기억이 남긴 재이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두려워하거나 비난하면서 피하지 말고 그것을 보아야 하고 직시해야 한다. 두려움은 사실, 즉 있는 그대로의 실상에서 달아나려는 바로 그 행위에서만 일어난다.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하게 자유의지로써 단연코 권력과 출세를 무시해야만 한다. 선택 없이 직시하고, 보고, 수동적으로 자각하면서 재와 외로움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무언가와 더불어 사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지, 집착하는 게 아니다. 외로움이라는 재와 더불어 살려면 반드시 거대한 에너지가 있어야 하며 이 에너지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을 때 찾아온다. 163

 

 

 

두려움과 불안정 때문에 폭력이 생긴다. 또는 외롭다는 느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 자신에게 쾌락을 주던 것이 없어졌따는 느낌 때문에도 폭력이 생긴다. 만약 그대가 자신 안에 있는 그런 폭력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것을 분석하는 대신 자각하고 전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넘어서기 위해 분석하느라 흩어졌던 에너지를 모두 갖게 될 것이다. 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