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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은 '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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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하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37.242), 작성일 03-10-09 12:25, 조회 4,10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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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은 '옛말'

진정한 건강법은 탐욕을 줄이고 정신을 살찌우는 것...



- 권태윤 기자 bigmankty@yahoo.co.kr




<육체의 건강보다 강한 정신의 건강>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이런 욕망을 반영하듯 우리 사회는 늘 앞다퉈 건강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은 무료 사은품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뛰고 달린다. 최근에는 채소가 사람에게 좋다는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채소값이 폭등해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되었다. 하기야 건강에 좋다면 온갖 것을 잡아먹는 우리들의 빗나간 욕심에 비춰본다면 채소를 즐기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런 측면도 있다.



(칼릴 지브란)"신은 영혼을 위한 신전으로써 우리들의 육신을 만들었으며, 그 신전은 신을 그 안에 모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만 한다"고 했으며, (유베날리스)"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내 자신이 건강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조건 건강을 외치거나, 그 목적이 다분히 육체적 욕망을 위한 경우가 많고, 정작 가꾸고 다듬어야 할 정신은 황폐하게 방치한 채 ‘좋은 몸만들기’에만 미쳐 있는 사례를 발견할 때면 정신없이 불어 닥치는 건강열풍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우리들은 몸에 좋은 것에 지나치게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스럽게 달려든다. 붉은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보도가 나가자 금방 포도주가 동이 나고, 등푸른 생선이 좋다고 하면 밥상엔 생선만 오르고, 곰쓸개가 몸에 좋다고 목숨을 걸고 쓸개즙 주사를 맞는 무지막지한 짓도 마다하지 않으며, 사슴의 생피도 마구 빨아먹고, 뱀의 간도 꺼내 먹는다.



그러나 몸에 나쁘다는 것들을 금하는 소리는 잘 듣지 못한다. 담배가 그렇게 나쁘다고 해도 흡연 인구는 늘어나고, 술이 간을, 정신을 상하게 해도 음주인구와 술 소비량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건강이 망가지고 비만인구가 늘어만가는 것은 탐욕에 있다. 혀를 만족시키는 달콤한 맛에 정신을 빼앗기고,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기피한다. 자연히 몸은 비대해지고 숨이 가빠올 수밖에 없다. 그래 놓고서 건강을 위한다며 온갖 약품을 섭취하고 지방을 뽑아내는 수술까지 해댄다. 먹는 것을 줄이면 될 것을 지나치게 먹어놓고 그것들을 소비하느라 다시 뛰고 달리는 어리석은 ‘다람쥐의 달리기’를 계속한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새벽마다 달리기를 하던 YS의 영향 탓인지, 건강을 위한다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 운동을 하는 노인들도 많고, 아예 밥만 먹고서는 하루 종일 스포츠센터에서 소일하는 아주머니들도 많다.



전체가 10이라는 인생을 건강하게 살겠다며 절반인 5는 먹고 자는 일로 소비하고 다시 남은 절반을 뛰고 달리는 데 써버린다고 보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잊어버린 채 ‘운동을 위한 운동’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아붓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망한 짓인가 싶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운동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자신의 신체장애를 빗대어 우스개소리로 한 말이 그러나 나에게는 전혀 우스개로 들리지 않는다.



결국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는, 단지 ‘건강을 위한 건강 챙기기’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건강한 몸을 만드는 목적이 육욕을 채우고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까지 한다면, 그런 건강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폭력의 도구일 뿐이다.



오래 전 한 전문 ‘제비족’의 자서전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제비족은 술은 물론이거니와 담배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러 여성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끗한 정신상태와 좋은 향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는 아침마다 두어 시간씩 달리기를 하고 틈만 나면 스포츠센터에 들러 몸을 관리하는데, 그 이유란 것이 물론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썩어 있는 사례다. 그러나 그 전문 제비족도 결국 건강한 육체를 잘못 사용한 탓에 정작 자기 아내에게 버림받고 폐인이 되다시피했다. 에픽테토스라는 사람이 “생활에 있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육체적인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을 탐한다든지, 또는 오락과 유흥에 몰두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품성을 낮추는 결과가 된다. 사람은 그의 많은 시간과 행동을, 정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듯 육체를 위한 몸만들기는 정신은 물론이요 결국 육체마저 병들게 한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다보면 책을 읽는 승객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다들 약을 먹은 닭들처럼 고개를 한쪽으로 떨어뜨린 채 잠을 청하고 있다. 건강을 챙긴다며 새벽잠을 설치며 뛰고 달리는 것도 좋겠지만, 육체를 조종하는 정신 살찌우기의 한 방편인 책읽기에는 게으른 모습에서 병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한다.



육체의 힘은 영혼이 주는 충격을 견뎌낼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도 정신이 병들면 쉽게 쓰러지고 만다. “육체를 조종하는 것이 정신일진대 정신이 정도(正道)를 생각하고 있다면 육체는 자연히 정도를 걷게

된다”는 채근담의 교훈은 그냥 흘러버릴 말이 아니다.



사실 “우리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의 엷은 가죽 주머니에 싸인 우리 몸은 피고름이 가득 담긴 뭉치이므로 조금도 아까워 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 있다.



결국 “몸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진정한 공부의 시작”이라는 도올 김용옥의 말처럼, 건강을 위한 건강, 몸을 위한 건강에 매달리는 치열한 운동보다는 욕심을 줄이고, 지켜야 할 정신의 가치들을 지키는 노력들이 건강을 위해서는 더욱 소중하단 생각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국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강한 정신의 힘이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