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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이해(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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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sethi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36.61), 작성일 03-10-09 08:03, 조회 4,17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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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이해(세스)>



(‘세스’라는 영적존재의 채널링으로 ‘세스 메트리얼’이라는 책에서 옮겼습니다.)



“모든 질병은 자아가 잠시 그 병적인 요소를 자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이 표현은 말 그대로 직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죠. 질병과 같이 심신에 장애를 주는 활동 역시 자아 구조에 포함되는 요소입니다. 일단 그것이 자아 속에 받아들여지면 갈등이 싹트게 되죠. 아무리 고통스럽거나 해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자아는 일단 자신의 일부분이 된 것을 버리려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작용의 배후에는 수많은 이유가 관련되어 있죠.



우선 고통은 불쾌한 것이지만 의식의 경계를 파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유쾌하거나 불쾌한 강렬한 감각은 어느 정도는 의식을 자극하게 되어있죠. 그 자극이 모멸스러울 정도로 불쾌한 것일지라도 심리적 구조의 일정부분은 그것을 무차별하게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극도 아주 생생한 감각의 일종이기 때문이죠.



자극, 심지어 고통스런 자극에 대한 묵인은 의식의 기본적인 일부분입니다. 이런 행위는 유쾌하거나 고통스런 자극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구분은 훨씬 나중에 다른 차원에서 이뤄지지요. 자아는 모든 자극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자극의 분별은 지극히 분화된 의식 속에서만 이뤄지죠.



자아는 원래 질병이 자신에게 기본적으로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체 구조가 당면한 고난의 과정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질병에 걸리면 자아의 전체적인 초점, 즉 주요한 집중력이 건설적인 분야에서 장애가 되는 행위, 즉 다시 말해 질병의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질병은 새로운 통합원리를 대리하죠.



자아가 예전에 유지해 온 통합시스템이 망가지면 질병은 새로운 건설적인 통합원리가 원래의 시스템을 대체하기 전까지 자아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일종의 임시 비상수단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통합원리란 자아 자신을 형성해가는 행위그룹을 의미하죠. 행위가 지장을 받지 않고 거침없이 이뤄질 때 이런 원리의 변화도 비교적 원만하게 이뤄집니다.



그러나 장애물(질병)은 때때로 전체의 시스템을 온전하게 유지시키면서 심령적 문제점을 지적해줍니다. 따라서 질병은 자아를 구성하는 행위의 일부분으로써 나름대로 목적을 지닌 것이며 자아를 침범해 온 외부의 세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질병이 원래의 목적을 이룬 후 오랫동안 남아 있지 않는 한, 장애가 되는 행위라고는 할 수 없지요. 설사 그런 경우에도 모든 사실을 알지 못하고는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질병은 새로운 통합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동안에는 비상 수단으로써 자아를 안심시켜 주기 때문이죠.



바꿔 말해 자아의 구성 성분이 될 행위들을 철저히 통찰하지 않은 채 그것이 장애 요소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죠. 이 점을 간과할 때 보다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면 신경증적인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신경증적인 거부반응이야말로 불필요한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지요.



질병은 대개 어떤 (특히 정신적인)행위를 끝까지 완수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결과입니다. 원래의 행위 노선을 포기하고 에너지가 자유로이 흘러가게 할 때, 질병도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내적 자아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아에게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라 물질적 현실을 경험하는 그 일부분이지요.



(세스는 육체적 증상이, 우리가 이런 저런 정신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리는 내적 자아의 메시지라고 강조합니다.-저자)



아주 치명적인 증상이 아닌 외적 질환은 대개 해결과정 중에 있는 문제들, 즉 ‘공개된’ 문제들을 나타냅니다. 그런 질병들은 발견 과정의 산물이죠. 병증들을 진보의 계량점으로 이용하여 내적인 문제들을 직시하고 극복할 수 있는 위치로 끌어낸 것입니다. 원래 시행 착오의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지만 그러한 내적인 과정이 육체적 질환을 통해 더욱 가속되는 것이죠.



(세스는 가벼운 질환들은 치료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마음가짐을 바꾸고, 병증이 나타나는 내적인 문제를 탐구하며, 증상의 개선 여부를 통해 자신의 진보를 판단하는 것이죠.-저자)



병증이 궤양과 같이 내적인 것이라면 자아가 아직 문제 자체를 직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병증도 육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증의 가시성은 문제에 대한 자아의 마음 가짐을 알려주는 단서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조건대로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결정한 방식대로 삶이 진행되기를 요구하며, 나름대로의 이유와 목적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삶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본질적인 생명에 대해 대항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일단 삶의 조건대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이 구하던 것을 얻을 수도 있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지속적인 삶의 조건으로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삶의 활력과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건강과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지성과 직관, 이제껏 받아온 축복까지도요.



자신이 설정한 조건에 맞도록 삶을 억지로 뜯어 맞출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목적이 존재하며, 그것이 이뤄질 것이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자신이 나름대로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면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녁놀과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축복과 기쁨으로 심장의 박동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당신에 비해 이제껏 받은 축복과 삶을 고대할만한 이유가 형편없다 하더라도 놀라운 성취를 이루고,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조건대로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충만한 은총을 얻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삶에 바침으로써 얻는 은총을 말입니다.



여러분이 건강을 추구해야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존재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존재의 본질적인 지성을 신뢰해야만 하지요. <우주의 에너지는 여러분의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개화된 의식으로써 그 에너지의 일부이죠. 그러나 건강이 좋지 못하다면 자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육체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악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특정한 부위에서 에너지의 흐름이 막혀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활용할 수 없음을 말하죠. 이론적으로 말해서,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면 삶은 최상의 건강을 유지하며 온갖 풍요로 가득 찰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해서 영적으로도 부유하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특정한 분야에서는 거칠게 없지만 또 다른 분야에선 많은 장애에 부닥칠 수도 있으니까요. 이상적인 상태는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그런 과정 중에 남을 돕는 것입니다.”



-저자는 제인 로버츠, 말한 이는 영적 존재인 ‘세스’로 저자인 제인 로버츠를 통해 말한 것임.




<추신: 오늘 하루도 Enya의 힘찬 노래와 함께 시작합니다...아~~자!! ^^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