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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파 껍질 벗기기 --프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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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아름다운 마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3.♡.182.16), 작성일 09-01-03 08:24, 조회 4,59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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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파 껍질 벗기기









당신들이 이곳, 치유의 에너지가 넘치고 넉넉한 온화함이 넘쳐나는 이곳에 오신 걸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제 당신들은 발견하게 될 겁니다.



고통을 치유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짐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자신들의 몸에 너그러워진다면 우리는 기쁠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인류의 성본능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요 며칠 동안, 잠시 멈춰 서서 성 본능에 관한 자신들의 신념체계를 생각해보신 분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여러분들 내면에는 죄책감이란 것이 프로그램 되어 왔습니다.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로 수많은 세월동안 그래왔고, 당신들의 이 생애까지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자유의 문이 활짝 열린 위대한 이 시대에도, 인간성이 자존을 외치고 문화가 꽃피는 이 시점까지도 당신들은 여전히 죄책감을 안고 다닙니다.



 죄책감의 상당 부분은 성본능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본능에 대해 얘기를 꺼낸 김에 당신들의 죄책감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죄책감이란 아직 배우지 못한 가르침에 불과합니다. 후회 역시 아직 배우지 못한 가르침이지요. 이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애를 전망해볼 때,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본다면, 지금까지의 머나먼 여정을 돌아본다면, 영혼의 차원에서는 나날의 삶이 배움의 연속이었음을 지성적으로 알게 됩니다.



 자신의 모든 면이 실은 신성의 반영이며 신성의 표현이므로 잘못된 결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빠질 수 있나요? 어떻게 후회할 수 있나요? 그렇지 않나요? 이처럼 아주 간단한 겁니다.









당신의 삶에 일어난 모든 상황은, 당신이 잘못된 것이라 판단했던 모든 상황은, 당신에게 불행을 안겨주었던 모든 상황은, 당신의 배움을 위해 거기 있었던 겁니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당신이 바로 신임을 알도록 하십시오.



 벗들이여, 당신들은 낮은 차원의 인류가 아닙니다. 영적 존재가 되기 위해 투쟁하는 3차원의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모두 영적 존재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건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이러한 차원을 경험하기로 선택한 이유중 하나는 사실, 그 경험, 그 색채, 그 진동의 강렬함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모든 경험, 모든 사람을 선택해 왔던 겁니다.



많은 것들을 알고 깨우친 이제 와서, 당신들은 지난 생애를 되돌아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맙소사! 내가 왜 그랬지? 어떻게 그처럼 어리석을 수 있었지? 어떻게 그렇게 두려워하고 아악하며, 비정할 수가 있었지?”



우리는 오늘 저녁 내내 당신들이 스스로를 매질하는 데 사용하는 모든 속성의 리스트를 함께 작성해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그 이유는 바로 당신이 원했기 때문입니다. 배움을 위해 당신들이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간단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합니까? 다른 누군가를 해쳤다는 죄책감?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다른 누군가도 모든 상황을 함께 창조하면서 당신과 거기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벗들이여? (한 신사를 바라보며) 당신은 죄책감의 여행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크게 웃으며) 잘 하고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수많은 판단으로 그렇게 합니다.









음, 벗이여, 그처럼 위대한 영적 존재가 판단 안에 갇혀 있다니.. 정말 슬픈 일이군요.



사랑하는 이들이여, 모든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배움을 위해 당신과 함께 거기 있는 것이고, 그 경험은 반반씩 공유하는 겁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들 자신의 배움을 어떤 식으로 창조하든, 그건 당신이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그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아이가 됐든, 연인이든, 보모든, 단순히 가볍게 알고 지내는 사람이든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누군가를 자기가 죽게 했다고 자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당신이 차를 몰다 일어난 사고든,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든 말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고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매우 정교한 자동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사고를 내어 동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체의 죽음을 야기시켰다고 했을 때, 당신은 그것이 선택된 것임을 진실로 알아야 합니다. 서로가 선택한 것인데 죄책감이 설자리가 어디 있습니까?









후회 또한 죄책감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당신의 삶 속에 창조한 모든 상황이 없었더라면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서 있는 곳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 대부분은 현재의 자신에 대해 그다지 행복해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으니까요.



 다음번에 또 다시 심한 죄책감의 공격을 받는다면, 심한 후회의 공격을 받는다면, 이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선택했고, 잘못된 것은 없다.’고 그저 존재할 뿐입니다.









프타아, 예를 들어 사고와 같은 상황을 선택하는 데 있어, 오십 대 오십의 공유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공동 창조라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싶은 당신의 바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이해하기가 사실 좀 어렵지요.



 당신이 만약 즐거운 어떤 것을 공동 창조했다면, 그땐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여, 비참한 상황이든, 경이로운 상황이든, 그런 차이를 만들어낸 건 당신의 판단입니다. 모든 것은 배움을 위한 것일 뿐입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힘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당신의 물리적 현실, 즉 이러한 밀도를 지닌 현실은, 당신의 신념체계가 창조한 것입니다.



그렇죠? 당신은 신념에 따라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 생각은 감정에 싸여 우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우주는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경이로운 것으로 판단한 어떤 것을 원하든, 또는 잘못된 것, 나쁜 것이라고 판단한 어떤 것을 원하든, 우주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주는 그저 자신을 재배열하여 당신의 신념에 응해줄 뿐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자신은 다른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힐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고 합시다.



의식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서 그렇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가장 강력한 신념은 의식할 수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과거의 어떤 일에 대해 벌을 받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상처를 입히고 벌을 받고 싶은 마음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변화하기를 원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에 부쳐서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차원에서 저 차원으로 바뀌기를 원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이유들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가능성이 주어지면, 두 사람은 만나게 되고, 그것이 사고라 불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작용되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바로 이와 같은 방식입니다. 그들은 원합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자신은 이러한 일을 기대한 적이 없다고. 그런데 동네 모퉁이에서, 슈퍼마켓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고, 그리곤 놀라운 사랑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유야 어떻든 사람들은 함께 창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경이로운 일이라고 판단한 것,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을 서로에게 반영하면서 각자 배우게 되는 거죠. 질문에 대한 답이 됐나요, 벗이여?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문이 생기는군요. 감정을 품은 생각이 근본적인 힘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것이 힘을 부여하지요.









그럼, 엄청난 감정을 품고 복권에 당첨되는 걸 상상할 수도 있겠네요.









물론이지요.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군요.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요?









왜냐하면 마음 밑바닥에선 당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그렇지 않다고요?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는 더 유익한 방법을 알고 있지 않나요? 그 방법을 알고 있지 않나요?









그래요, 그건 일리가 있군요.









그럼요. 정말 아주 간단한 겁니다. 자신의 현실은 자기가 창조한 거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곧잘 말합니다.



“그럼 난 대체 왜 이렇게 가난한 거요?” 여기에 대해선 이미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당신은 돈에 대해서 진정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당신의 삶 속에 조화롭지 못하다고 믿는 상황은 무엇인지 종이를 준비해서 리스트를 작성해 보십시오.



 종이의 한쪽 면에는 당신이 느끼는 경이로운 일들을 적어보세요.



다른 한쪽에는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보세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되는 거죠.



 당신은 매우 놀랄 겁니다. 당신은 이 방법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믿고 있는 바를 발견하게 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당신이 진정으로 경멸하거나 싫어하는 모든 요소를 적어보세요.



당신의 어머니, 연인, 이웃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싫어하는 모든 요소들을 적어보십시오.



 리스트 작성을 끝마치면 그걸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 대해 당신이 싫어하는 것들이, 실은 자기 자신에게 대해 진정으로 경멸하는 것들이 아니던가요?



사랑하는 이여,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 바깥에는 아무도 없으며, 모든 것은 거울이요, 반영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력한 주인인지, 진실한 이해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 그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다고는 볼 수는 없겠죠. 그런데도 어떻게 공동창조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자, 이 점을 당신에게 제시해야겠군요.



누군가가 아주 잔인하다고 판단될 때, 예를 들어 동물을 학대하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당신 가슴속에는 분노가 일어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럴 테지요! 그러면 당신은 말할 겁니다.



  “이건 나의 반영이 아니야!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동물을 때린 적이 없으니까. 더구나 난 동물을 사랑하므로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당신이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는 잔인성에 대하여 살펴보기를 권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요. 동물에게 잔인하게 구는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것과 연관지을 수 있습니까?









벗이여, 그건 사실 잔인성의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아이를 때리든, 혹은 개를 때리든, 그들이 나타내 보이는 건 두려움입니다.



그런 두려움의 파동을 타고 당신이 잔인하다고 판단한 것이 전시되고 있는 겁니다.



 자, 기억하시고 있겠죠? 배움을 위한 공동창조를 말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잔인하다고 판단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자신은 지금껏 한 번도 잔인한 짓을 한 적이 없다면, 그땐 자기 자신에게 잔인하게 굴었던 적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신들은 자기 자신에게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 모두 말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벗들이여, 현실의 차원뿐 아니라 다른 여러 차원에서 볼 때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십시오.









이번 기회에 당신들이 몰두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양파 껍질 벗기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껴안고, 진실로 모든 면에서 내가 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껴안음 속에서, 그런 인정 속에서, 당신은 그토록 원하던 변화를 창조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숨으려고 해서는 변화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그런 국면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면 변화를 창조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반영된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기든, 진실로 그것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든 말입니다.



당신이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힘을 부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소위 소우주로서의 당신이 작동되는 원리입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고통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면 여길수록, 더욱 그것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우주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우주를 향해 쏘는 것은 무엇이든 되돌아옵니다.



생각은 당신 머릿속에 갇혀 있지 않다는 걸 상기시켜 드립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생각은 당신들의 머릿속에 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를 겨드랑이 속에 집어넣어도, 생각을 놓치는 일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두려움을 어떻게 가치 있게 만들죠?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라고요?









그렇습니다. 두려운 부분도 유효한 것이며, 당신 자신의 신성한 국면임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그것을 자기 자신 안으로 껴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 껴안음 속에서 변화가 창조되는 거지요.



 사랑하는 이여, 이런 식으로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물리적 현실에서 두려움을 겪을 필요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무가치하게 여기면, 두려움을 밀쳐내고, 억누르고, 숨으려고 하면, 그땐 거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주게 되고, 정확히 그것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프타아, 아마도 이 질곡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서, 그 상황과 분리된 상태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관찰자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한 방법이지요. 분노에 대해서도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분노를 무가치하게 여기지 말라고요. 그리고 ‘분노를 장악하지 못하겠거든 아예 거기에 따르라’고요. 분노의 불꽃놀이를 온전한 기쁨 속에서 경험하게 되면,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버린 거지?’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움의 실체를 체험하는 겁니다.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해서 ‘오 하나님, 이건 너무 끔찍해요. 우리는 두려움을 억제하고 제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래 그게 나야, 난 두려워하고 있어.’ 인정하고 약간의 연민을 가져보세요.



자기 자신의 모든 면이 유효하고 신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세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존재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껴안음으로써 당신 자신의 모든 면에서 순종하십시오. 그럴 때 당신은 변화를 창조하게 되고, 꽃피우게 되고, 활짝 열리게 됩니다.









멋지군요. 









정말로 근사하지요. 하지만 당신들 모두가 그러합니다.









프타아, 공동 창조에 대한 건데요. 현생을 살아가는 동안 창조해 나가는 겁니까? 아니면 이 생에 오기 전에부터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당신은 태어나기 전에 소위 ‘광대한 스펙트럼 플랜’을 선택한 것입니다. 거기엔 부모나 형제나 형제자매들도 포함되어 있죠. 그리고 수많은 생애 동안 당신과 친했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창조해 나갈 일들을 선택합니다.



문화적 환경도 당신이 선택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생애 동안 일어날 일들, 배워야 할 가르침, 경험해야 할 기쁨들을 다른 생애 동안 경험했던 것에 비추어 전반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생애마다 똑 같은 것만을 반복한다면 끔찍한 일일 겁니다. 다양함을 즐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게임 플랜을 정해놓고는 사람이라는 물리적 현실에 들어와 순간순간 게임을 하면서 창조하는 겁니다.



벗이여,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앎에 이르면, 삶의 고통과 번뇌로부터 변형을 이루면, 그땐 현생뿐만 아니라 모든 생애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 그리하여 이번 생에 대한 자신의 역사도 다시 쓰게 됩니다. 소위 과거라는 것을 바꾸어 가는 거지요.









이번 생에 태어난 목적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아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까요?









벗이여, 당신의 삶의 목적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목적은 같습니다. 여러분은 당신네 행성 역사상 오늘날의 이 시간과 공간 속에, 그리고 이 행성의 인류라는 역사 속에 자신들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의 목적은 여러분 안의 ‘신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자 배워야 할 특별한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요. 날이면 날마다 그런 배움들과 더불어 당신은 자신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겁니다.









나 자신을 이끌어내기 위해 배워야만 할 것들을 미리 볼 수는 없을까요? 아니, 전 이미 그 답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쯤에서 잠시 휴식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승격한 스승들이 여러분 모두의 몸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주실 것입니다. 웃는 얼굴을 보니 매우 좋군요. 그게 바로 불을 밝히고 축제를 벌이는 일입니다. 매우 좋습니다.









프타아, 우리들의 판단으로 인해 과거에 단절되었던 우리 자신들의 그런 부분들과 어떻게 하면 연결될 수 있을까요?









벗이여,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으니까요. 인류의 의식 안에서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 내에서도 모든 것이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모든 판단과 모든 두려움이 눈에 띄게 극성을 부릴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순간순간, 당신에게 고통과 두려움을 야기 시킨 모든 것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벗들이여, 그건 무엇인가를 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영혼 에너지와 당신의 신념체계가 조화를 창조하기 위해 가르침과 하나됨에 필요한 것들을 나날의 삶에 가져오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더 좋게 만들려고 조급하게 서둘러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좀더 좋은 것을 바라게 되면, 현재의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의 당신은 사실 완벽하며, 매순간마다 완벽합니다.



완벽함이란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당신의 승천과 더불어 생기는 어떤 완성품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의 신성 안에 있을 때, 그것이 완벽함입니다. 어떻게 다른 것일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이야말로 모든 면에서 신성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듣고 보니 생각이 깊어지는군요.









당신은 판단 속에 있군요.(웃음)









투쟁해서 쟁취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가요?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강력한 프로그램을 갖는다는 것도,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것이잖아요. 당신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말씀하셔도 말이에요. 우리는 좀더 나아지기 위해 그렇게 강력한 프로그램을 갖는 게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냥 살아라, 좀더 나아지려는 생각조차 하지 말라고요? 그게 맞습니까? 왜냐하면 저는 걱정이.., 그러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좀더 나아질까 이 궁리 저 궁리하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사랑하는 여인이여.









그게 쉽지 않아요.









사랑하는 이여, 모든 건 아주 간단합니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당신은 신성의 표현입니다. 그냥 존재하세요



. 당신이 순간의 충만함 속에 있게 되면, 투쟁하지 않은 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판단도 하지 않은 채 순간을 살게 되면, 그것으로 당신은 당신의 행성 위에 신성의 본질을 충만하게 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이 진정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당신은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어제와 비교하지도 않고, 내일에 대해 걱정하지도 않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당신 전부와 앞으로의 당신 전부는 모두 신성의 표현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올 변화에 대해 걱정하느라 바쁘고, 퍼즐 조각을 꿰어 맞추면서 지금까지의 현실을 바꾸느라 바쁩니다. 더 많이 누리려고 걱정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걱정합니다. 진실로 하던 짓을 멈추고 존재하기 시작하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당신은 만유의 생각 자체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당신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도 심판할 이는 없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교할만한 위대한 역할 모델이라는 것도 진실로 없습니다.



 두려워할 어떤 것도, 부끄러워할 어떤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나름대로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도록 하세요.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하나의 보석입니다. 당신들이 경외심을 안고 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여러분 각자도 경외심으로 바라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저마다 각각 다르면서도 얼마나 숨 막히게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변화에 대한 당신들의 갈망을 이해하고 있고 그런 갈망을 품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변화는 껴안고 인정할 때만 실현됩니다. 그러니 조금씩 조금씩 자기가 신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만유의 생각 자체라는 사실을 가슴 속에서 진정으로 깨우쳐가도록 사십시오.



 영적인 존재가 되려고 투쟁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이미 영적인 존재입니다. 좀더 나아지려고 투쟁하지도 마십시오. 당신들은 모두 완벽하니까요. 당신들은 진실로 장엄하고 경이로운 존재들입니다.









프타아, 삶을 너무 치밀하게 계획하기보다는 모든 일이 그냥 발생하도록 허용하라는 말인가요?









그것이 마땅히 어떠해야 된다고 매우 엄격한 계획을 붙들고 있을 때, 그 일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때를 마음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합니까?









그걸 붙든 채 씨름하겠지요.









사실, 그때 당신들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있는 겁니다. 가능한 현실들을 말입니다. 여러 가지 조합 가능성들. 당신들은 자신들의 창조성을 제한하고 있는 겁니다. 자, 이제 간단히 말하세요.



“이것이 내 존재의 신이 원하는 바다. 이것이 내가 창조하고 싶은 바다”









그것을 우주에 내보내고, 당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지 말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고, 언제 일어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당신은 당신 자신의 창조성을 차단하게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계획을 세우고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붙들려서는 안 됩니다. 창조성의 흐름을 허용하세요. 모든 것은 당신 자신의 신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겁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몇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저는 제 마음이 같은 주기로 반복되면서 맴도는 걸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의 기본적인 원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요지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벗이여, 먼저 기본 원리는 당신이 신이며, 신성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만유의 한 생각입니다. 전에도 말했듯이, 당신은 장미 향내 풍기는 신입니다.



당신은 이런 차원의 현실에서, 이러한 경이로움 속에서, ‘표현되고 있는’ 전체성입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 상태의 기본 원리입니다. 당신이 이것을 안다면 다른 모든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계속하시죠. 벗이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공간과 에너지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안 됩니다. 벗이여, 우리가 에너지에 대해 말해 주어도 당신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말해왔던 모든 내용이 실은 에너지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이 에너지라고 생각하겠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는, 에너지의 근원은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만물의 근원에서 나오는 것이고, 만유 자체이며, 알려질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에 대해 정의를 내려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신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공간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과학적인 존재라면, 공간이란 수학적 방정식이라고요. 그러나 당신은 사실 공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고 싶은 겁니다.









맞습니다. 









제가 내려주는 어떤 정의도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보다 더 이해하기 쉬우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은하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까?









그리고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도요.









하지만 우리는 벌써 말해주었는데요. 벗이여, 수학적 방정식이란 이미 거기 존재하는 것의 지도일 뿐입니다. 순수의식의 무한성을 설명할만한 수학적 방정식이 아직까지는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순수의식이란 근원 자체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라는…









그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비인격적인 신의 존재란 모두에게 알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영을 통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지금 이 차원의 현실을 훨씬 넘어선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당신은 감정이라는 것을 통해 신성한 근원을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것, 분리란 없다는 것, 벗이여, 그것이 신에 대한 앎입니다.





물질이 에너지로부터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도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물질을 창조하는 건, 의식입니다. 바로 그 부분이 당신네 양자 물리학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이란 순간적으로 거기 있기도 하고, 또 순간적으로 없기도 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질이란 오직 진동 주파수일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생각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겁니까? 생각 역시 에너지란 말입니까?









그래요. 생각 역시 진동 주파수입니다. 생각이란 빛보다 더 높은 진동 주파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의 진동 주파수보다도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의식입니까?









모든 것은 빛의 진동 주파수보다 위에 있습니다. 당신네 과학자들이 괘 오랫동안 붙들려 있었던 잘못된 생각은,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네 과학자들이 은하계 여행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 초공간 안에서 여행하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여행해야 됨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수초 내에 은하계를 넘나들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생각은 어느 곳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생각은 시간 속에 있지 않습니다. 생각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습니다.









어떠한 시공 연속체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생각은 다 에너지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사실 이 모든 과학적 질문들이 인류에겐 매력적이겠지만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결코 해답을 알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영혼 에너지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영혼은 생명체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겁니까?









그것이 바로 생명체입니다. 당신과 영혼 사이에는 분리가 없습니다. 당신과 다른 존재 사이에도 분리가 없습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던, 모든 영역, 모든 차원에도 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벗이여, 당신과 신성한 근원 사이에도 분리가 없습니다. 인류 전체가 진실로 이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때 비로소 모든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네 과학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기술은 바로 생각의 힘입니다.



다른 행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행성에서도 널리 사용될 기술은 크리스탈 테크놀로지입니다. 지금 이 행성에서는 그 기술이 태동 중입니다. 이 기술의 힘, 이 기술의 연료는 바로 생각입니다. 몇 주 동안 여기에 대해 말해왔고, 필요하다면 나중에 좀더 상세히 말하겠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흥미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한 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전정한 자기 자신을 알면 변화를 창조할 수 있고, 두려움이 머물던 곳에 사랑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탈 테크놀로지는 진실로 에너지의 엄청난 증폭기이고 저장고입니다. 만약 이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성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감정이 두려움이라면, 이 두려움은 증폭될 것이고, 엄청난 혼란을 불러올 것입니다.



만약 지배적인 감정이 사랑이라면, 벗이여, 그때는 이 기술을 사용하여 그 사랑이 증폭될 것이고, 은하계 전체를 통해 조화와 빛을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바로 그 때문에 이 시점에서 인류가 진정한 근원적 앎에 이르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벗이여, 근본 원리는 ‘내가 신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분리도 없이, 보이든 보이지 않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근원의 숨결입니다. 근원의 생각입니다. 그것이 근본원리입니다.









프타아, 우리 모두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단계에 도달하여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때도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벗이여, 하지만 한 가지가 거 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물질적 신체 안에 있을 것입니다. 지금과는 약간 다르고, 밀도가 더 약해지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은 여전히 지구 위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의 행성에 경이로운 일들을 창조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또 당신의 물리적 신체 안에서 다른 장치를 타고 한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로 여행할 것입니다





. 몸 없이 의식 안에서 여행하고 싶다고 결정할 수도 있고, 그러면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당신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뜻대로, 또 어떤 사람은 잠의 형태로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꿈에 관해서 얘기하면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선택할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프타아, 당신이 언급하셨던 밀도가 낮은 몸은 여전히 이 양극 세계에 속해 있게 되나요? 그리고 당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도 양극성의 세계인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양극을 생각할 때, 당신은 실은 긍정과 부정,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과 부정이 반드시 좋고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건 그저 우주의 물질적 상태일 뿐입니다.



 벗이여, 당신이 양극에 대해 말할 때, 당신은 판단 안에 있게 됩니다. 전기 공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포지티브 네거티브를 구분하긴 하지만, 이것은 좋고 나쁘다는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저 존재하는 겁니다.









프타아, 변화의 시기에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때 당신에게도 역시 영향을 미치나요?









은하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벗이여, 이런 변화는 단순히 이 행성에만 국한한 것은 아닙니다. 그 변화는 행성 조직이 달리 정렬되는 것입니다. 단지 이 행성뿐만 아닙니다. 우주가 달리 정렬되어 가는 거지요. 당신과 당신 행성 말고도 다른 존재가 있다는 생각에 당신이 아직 익숙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분명히 앞으로 있을 정렬은 은하계 역사상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나와 같은 에너지가 앞으로 있을 변화에 대해 도와주려고 당신네 행성 전체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네들의 변화가 위대한 아름다움, 위대한 기쁨, 위대한 사랑이 된다면, 그리하여 두려움이 없게 된다면, 많은 세계에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당신들 모두와 함께 하는 일말입니다. 여러 차원에서 돕는 존재들이 있지요. 시공 연속체 밖에서는 이 모든 것이 약간 다른 방식으로 전망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조하게 되지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미리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당신들의 주권을 빼앗는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신들 모두는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들은 당신네 행성을 딱딱하게 보는 데 익숙해 있고, 당신 자신도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그건 전혀 딱딱한 게 아닙니다. 같은 공간 내에도 수백만, 수천만, 수십억의 생명체들이 살아갈 여지가 있습니다. 하나의 지구만이 있는 게 압니다.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생각하기 쉽지만, 저는 각자가 다르다고 느낍니다. 그건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과 관계가 있는데, 신념은 실제로 시간을 변경시킵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혀 같은 시간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매우 미묘하지요. 당신은 당신 자신만의 틀로 창조를 합니다. 그땐 당신이 당신 우주의 중심 태양이고, 당신의 현실은 누구와도 다릅니다. 인류 전체의 집단 공명 안에는 분명 어떤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동의가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합의된 폭넓은 스펙트럼 현실 안에서 여러분 각자 모두는 자기만의 변주곡을 창조하는 겁니다. 물론 당신의 지각 방식은 다른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특수한 경험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 그 순간에는 과거를 다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투사를 통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경험할 수도 있고요. 그런 경험을 할 때는 다른 시간대에 던져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까요?









생각은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생각 속에서는 어린 시절이 있을 수도 있고, 나이 들어서의 모습을 투사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 내게 대가올 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그 순간 경험한 어린 시절과 실제로 어떤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벗이여, 머리에서 벗어나십시오. 당신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당신은 그 과정을 거쳐 왔고, 두려움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두려움이 무엇이었든, 당신이 진실로 그



것과 하나가 될 때까지는, 그 두려움을 사랑으로 바꿀 때까지는, 재창조하고, 재창조하고, 또 재창조해야 합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앞뒤로 가든, 이쪽저쪽으로 가든, 그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 느낌이 두려움이라면 그 두려움을 사랑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고, 그렇게 될 때 당신의 현실이 바뀌게 됩니다.









프타아, 저는 확실히 알고 싶습니다. 당신이 설명하는 내용이 때로는 우리의 지식을 넘어서기도 하는데, 우리가 그러한 지식을 넘어선 어떤 것을 경험하기 위해 보다 확장된 의식을 갖고 싶다면, 그래서 그것을 의식적으로 구한다면, 우리는 그리 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고말고요. 벗이여,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당신이 그것을 요구하든 요구하지 않던, 당신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 건 바라지 않을 겁니다. 사실, 배우기 위해 엄청난 드라마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웃음을 통해 배움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감정은 우리에게 느끼지는 않습니까? 가령 우리가 너무 늦게 변화되는 것에 대한 분노나 짜증 같은 거요..









내가 그런 것처럼 보입니까, 벗이여?









아니요. 









내가 여러분 모두에게 짜증을 낸다던지 화를 낸 적이 있었나요? 당신의 가슴은 무어라고 말합니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질문을 하다니 제가 어리석었군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원하면 언제든지, 어떠한 질문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당신이 한 질문 중에서 너무 시시한 것으로 여겨질 만한 것은 없습니다. 대답할 가치가 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모든 걸 알지 못한다고 해서 당신을 어리석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무엇인가를 아직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당신을 말썽꾸러기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진실로 이 모든 것은 당신 지성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당신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겁니다. 그건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신에 대한 판단을 멈추면,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진실로 이해하게 될 겁니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









자, 벗들이여, 사랑으로, 빛으로, 웃음으로 나아가도록 하세요. 그리고 매 순간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 존재하세요. 행복한 여행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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