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링크
추천링크

부처님은 음식을 공양 받고 설사로 돌아가셨다. [펌]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바바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191), 작성일 17-05-09 21:06, 조회 4,564, 댓글 0

본문


부처님은 대장장이 춘다의 음식을 공양 받고 설사가 나 돌아가셨다. 일설에 의하면 그 음식이 돼지고기였다고 하며, 다른 설에 의하면 버섯요리였다고 한다. 어느 경우이건 일종의 식중독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왜 부처님만 문제가 생겼느냐는 것이다. 부유한 금세공업자 춘다는 부처님 일행 500명에게 음식을 제공했는데 이들은 그 음식을 먹지 않았나? 먹었다면 모두 식중독에 걸렸을 것이다. 소위 집단식중독이다. 그래서 부처님뿐만 아니라 시자(侍者) 아난을 포함해서 모두 죽었을 수 있다. 그런데 부처님만 드시고 부처님만 돌아가셨다. 어찌 된 일일까? 


부처님은 우연히 춘다의 음식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불교 계율에 의하면 음식을 거부할 수 없다.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한다. 고기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비구가 문둥이 신도로부터 음식을 받는 과정에서 문둥이 손가락이 발우에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 경전은 그 비구가 그 손가락을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대중이 그 문제의 음식을 먹을 위험에 직면하였다. 대중을 살리려면 스스로 제정한 율을 어겨야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춘다의 음식을 총체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다. 대신 부분적 거부하기로 했다, 즉 그 음식을 자신만 먹기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서 부분적인 음식거부의 대가로, 즉 계율을 파한 대가로 죽음을 받기로 했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이 춘다에게 그 음식은 오직 부처만이 감당(소화)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으므로 동행한 제자들에게는 다른 음식을 주라고 말한다(이것은 춘다가 이미 대중을 위해서 충분한 양의 같은 음식을 준비했다는 방증(傍證)이다). 그리고 그 음식을 땅에 묻으라고 권고하신다. 신자가 정성껏 마련한 귀한 음식을 땅에 묻으라 한 것은 분명 그 음식에 어느 누구도 먹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징조이다. 하지만 부처님 본인마저 그 음식을 거절하면, 향후 제자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음식을 거절하는 고약한 전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신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며, 수행자들로 하여금 특정한 음식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부추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는 모든 것을 혼자 걸머지기로 결정한다.  

즉 부처는 스스로 계를 파하고 그 책임을 죽음으로써 진다. 

부처님은 임종에 즈음하여 아난에게 세 번이나 “여래는 더 살려면 오래 더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마 부처님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벌어진 자신의 죽음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직 전법해야할 대상과 지역이, 즉 무명이라는 암흑에서 깨달음이라는 빛으로 인도해야 할 생명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리라. 정각 직후에, 탐진치 삼독심에 깊이 물들어 있는 중생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며, 바로 열반에 들려하시던 부처님이 범천(梵天)의 간곡한 권청(勸請)으로 마음을 돌려 어렵게 시작한 전법활동이었기에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을 삼독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크게 성공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그 측량할 수 없이 깊은 부처님의 속마음을 어찌 아난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인가? 

사촌동생 아난이 120살까지 장수한 것을 보면, 부처님이 80세에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으며 아쉬운 마음이 한량없다.   

 

불교 사이트에 올라온 질문과 답변

 

* 질문: 석가모니 부처님은 열반시에 가섭존자의 물음에 7푼 두께의 금관을 뚫고
양발을 보인신후 곧 삼매진화에 의해 스스로 다비가 되시고
사리가 8섬4말 나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신장이 12자(3m60cm)정도에
체중이 거의 1000근 600Kg 정도 되었다는 앤긴데
사실일까요? 

 

* 답변: 수량의 개념이 지금의 기준과 달랐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아래와 같은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말이라는 것이 지금의 한말을 기준으로 생각하기보다, 여러부족과 나라에서 사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도나라는 바라문의 제의로 8등분으로 고르게 분배하는데, 각자 항아리에 담아서 돌아갔다는 열반경에 기술된 내용을 참고하면,

 8항아리 정도였다고 보면 정확하겠지요.

상식적으로 항아리에 가득 채우도록 담지는 않았을테니 실제로는 그 이하이겠지요.